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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우, "소멸하는 밤" (시집)

핀시 44

 

 

정현우 | 저자(글)
현대문학 | 2023년 01월 25일

 

 

현대문학 핀시리즈 소설에 이어 핀 시리즈 시, 정현우 시인의 '소멸하는 밤'으로 처음 만나본다. 총 41편의 시와 한 개의 에세이가 이 책에 담겨있다. 소멸하는 밤의 41편의 시는 총 3부로 나누어져 있고, 마지막 에세이의 제목은 '슬픔의 반려'이다. 소설을 읽다가 사이사이 시를 읽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현대 시보다는 오래된 시들이 더 좋다.

 

 


 

 

너는 모른다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을 나누고
고백하지 못한 한 사람의 마음을
오지 않을 사람은 기다리기로 한 겨울에
그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데
기억은 눈 젖은 길바닥에 혼자 짓밟혀

네 모든 것을 맹세하던
도시의 불빛 아래
버려진 너의 사랑을
너는 모른다

- P.14

 

 

데생


눈을 뜨면 사라지는 순간들은 한곳에 있고
빛은 직립이다.

- P.101

 


 

 

시집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시집이지만, 에세이가 더 좋았던 책이다. 시는, 한눈이 들어오거나 혹은 여러 번 다른 시기에 읽어보면 더 깊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집이 나에게 그럴 것 같다. - LMJ

 


 

 

정현우 시집 『소멸하는 밤


〈현대문학 핀 시리즈〉 마흔네 번째 시집 『소멸하는 밤』은 세련된 이미지의 서정성으로 주목받은 정현우 시인의 2년 만의 신작이다.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영혼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비가”(이병률)라는 호평을 받은 첫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는 상실로 인한 빈자리를 “지친 몸과 더듬거리는 마음으로 누벼가며” 슬픔을 통해서 해답을 찾는 사유의 힘을 보여준다.

시 속의 화자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한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외면하면서 파편처럼 부서진 삶을 살아간다. 화자는 떠난 사람을 애도하며 “방심과 외면에 대한 죄”를 깨닫고 “모든 슬픔이 완벽하게 애도될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게”(임지훈) 된다. 화자가 속한 세계는 “이 겨울 숲에 살아 있는 것은 없”(「반딧불이의 노래」 부분)을 만큼 황폐하고 참혹한 공간이다. 그에게는 ‘작은 소녀’가 되어 꿈에 나타난 엄마뿐만 아니라 생생하게 피어난 꽃과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잠자리도 애도의 대상이다.

 

모든 존재는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은 여백을 증명하”(「기일」 부분)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사물을 바라보든 “마음의 뒤편은 늘/멍빛으로 젖어”(「수국」 부분), 그의 일부였으나 이미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그리워한다. 그의 마음에는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산재해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죄의식으로 뒤덮여 상실의 슬픔은 완전히 메꿔지지도, 산산이 부서지지도 않는다. “‘슬픔’은, 이 메꿔질 수도 없고 산산이 부서질 수도 없는 한 사람의 삶을 기워나가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임지훈 평론가의 표현처럼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 어떤 이야기도 시작되지 않는다(「프리즘」 부분). - 출판사 서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