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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랑과 나의 사막" - 핀 시리즈 소설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3

 

천선란 | 저자(글)
현대문학 | 2022년 10월 25일

 

 

창비교육 테마소설 시리즈, 여행하는 소설 -『사막으로』 그리고 함께 걷는 소설 -『그림자놀이』로 천선란 작가의 단편을 읽고 장편 소설은 처음 읽는다. 개인적으로는 SF 소설류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천선란 작가와 김초엽 작가의 책은 선뜻 읽게 되지는 않는다. 이번에 현대문학 핀 시리즈로 읽게 된 이유는 언니의 영향이 조금 큰데, 얼마 전 천선란 작가의 책들을 캐나다로 보내달라고 부탁해서, 어떤 점 때문일까?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그리고 챙겨 온 바구니에서 붉은빛의 고운 모래를 꺼내 랑의 고개를 돌려가며 귀에 조금씩 흘려 넣었다. 
'세상은 시끄러우니까. 더 듣지 말고 편하게 잠들라고.'

- P.12

 


'그림에는 감정이 들어가고 사진에는 의도가 들어가지. 감정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고 의도는 해석하게 만들어. 마음을 움직인다는 건 변화하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는 것. 그래서 인간은 정지해 있는 그림을 보고도 파도가 친다고, 바람이 분다고, 여인들이 웃는다고 생각하지. 사진은 현상의 전후를 추측하게 하지만 그림은 그 세계가 실재한다고 믿게 돼.'

- P.19 (고고의 말)



데이터에 따르면 랑의 죽음으로 지키는 '충격'과 '부정'의 과정을 거친 뒤 '죽음의 인정'과 '절망을 동반한 슬픔'을 충분히 겪고 '온전한 슬픔'과 '사무친 외로움 다시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인정'과 '안정된 슬픔'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지키는 충격과 부정 없이 그 두 가지 감정을 느낄 때 나타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죽음의 인정'으로 갔으며, '절망을 동반한 슬픔 '안정된 슬픔'으로 닿은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이렇게 단계를 마구잡이로 뛰어넘고 순서를 뒤바꾼다. 하지만 이건 위험하다. 거치지 않는 감정은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몸에 쌓인다.

- P.21

 


'마음은 중요해'
랑의 말에 나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했고, 랑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목적이야. 네 목적에 가장 빨리 닿으려고 애쓰는 게 마음이야.'

- P.44

 


고집부리는 인간의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꺾을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단단한 말을 꺼내거나 완전히 녹아내리도록 여리고 따뜻한 말을 꺼내거나.

- P.68

 


"버진, 당신은 어디로 가지?"
"나는."
버진이 사막을 둘러본다.
"어디든 가지만 어디로 가고 있지는 않네."
그것은 모호하지만 분명한 말이었다.

- P.74

 


"감정은 교류야. 흐르는 거야. 옮겨지는 거고, 오해하는 거야."
- P.133 (살리의 말, 살리는 나무가 있는 곳에서 만난 외계인. 인간일지...)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릭 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서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 P.144 (책의 마지막 문단)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북 커버는 그 소설을 상징한다고 생각하기에, 일반적인 사막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SF 소설류는 좋아하지 않지만, 천선란 작가의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다. 일반적으로 소재답지 않아서 새로웠고, 미래의 삶과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책이다. 수집한 문장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담아두고 싶은 표현들이 많다는 것이기에, 이 책은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책이기도 하다. 미래의 도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너무 변화되는 시대에 살고 싶지는 않다고 느낄 뿐이다. 철학적인 부분들을 담고 있기도 한 책인 것 같다. 장소가, 배경이 사막과 미래이지만, 어쩌면 나의 시대는 사막일지도... 지금, 낮에 덥고 밤에 추운 푹푹 꺼져가는 사막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사막은 미래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 LMJ

 

 


 

 

여정 끝에서 발견하는 진실!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오래전 만들어졌으나 기능을 잃은 채 사막에 파묻혀 있던 로봇 ‘고고’는 어느 날 소년 ‘랑’에 의해 발견된다. 랑은 엄마 ‘조’와 함께 고고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그렇게 사막 한가운데서 랑과 조와 고고의 동거가 시작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조는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하고, 랑마저 고고의 곁을 떠난다. 고고와 함께 랑의 시체를 함께 묻어준 랑의 친구 지카는 고고에게 함께 바다로 가자고 제안하지만 고고는 이를 거절하고 더 깊은 사막 한가운데로 홀로 떠난다.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기억이 삭제된 고고는 문득문득 자신의 과거가 궁금하지만 혹여나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고고는 홀로 떠난 길에서 인간과 로봇, 외계인을 차례로 만나며 동행을 제안 받지만 거절한 채, 랑에게서 받은 것들을 성실히 복습하고 실행하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랑을 애도한다. 그 가운데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알 수 없는 기억들이 회로 오작동에 의한 것이라 여겼지만, 고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곧 깨닫고 묵묵히 가고자 하는 곳으로 걸어간다.

“단 하나였던 삶의 목적을 잃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구의 환경조차도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고고에게는 랑이 세상의 전부였고, 랑이 고고에게 다음 목적을 만들어주지 않고 떠난 탓에 고고는 덩그러니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대로 툭 놓인 상태의 덩그러니. 그렇게 삶의 선택지가 랑 하나였던 고고는 결국 또다시 랑을 자신의 유일한 목적으로 둡니다. 그렇게 여정을 떠난 고고에게 랑이 아닌, 고고의 목적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천선란, 〈작가의 말〉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중

 


소재: 로봇, 사막, 미래 익숙한 소재를 다른 관점으로 풀어간다.

코멘트: SF 소설류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책은 추천하고 싶다. 간혹, 무슨 책인지 모르겠다는 리뷰들이 있지만, 인간의 감정과 삶을 소재에 잘 녹여내고 있다. 재미있게 읽었기에, 천선란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다는 책이다.